
기사 요약
- 일상에 스며든 AI가 삶의 질과 업무 효율을 눈에 띄게 높이지만, 최종적 방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 다음 5년은 풍요와 불평등이 함께 커지는 과도기이며, 일자리 전환과 인지 공간의 분절이 동시에 진행된다.
- 의도적이고 인간 중심의 설계, 안전망과 재교육, 그리고 용기 있는 리더십이 다리를 놓을 수 있다.
AI 근해: 약속과 위험이 교차하는 초입
일상 곳곳에 스며든 AI가 만들어낸 “AI 근해(near shore)”가 시야에 들어왔다. 삶의 질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조짐과 함께, “엘리시움”식 디스토피아로 기울 수 있다는 경고도 공존한다. 여정의 끝은 아직 희미하지만, 우리는 이미 생각과 일,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재편되는 초기 국면을 지나고 있다.
논쟁 지형: AI 근해를 해석하는 상반된 시선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지면만 봐도 전망은 극명히 갈린다. 인지과학자이자 AI 회의론자인 게리 마커스는 현재의 AI를 ‘통계적 눈속임’에 가깝다고 보며 초지능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반면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기계가 인간과 맞먹는 행위 능력에 다다른, AI 종말론의 문턱을 경고한다. 구글 전 CEO 에릭 슈미트는 진짜 핵심을 지정학으로 본다. 미국이 범용 인공지능(AGI) 경쟁에 분주한 사이, 정작 경제 곳곳에 생성형 AI를 뿌리내리려는 실무적 경쟁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드러난 초기 성과
논쟁의 향배와 무관하게 발밑의 지형은 변하고 있다. 교사는 수업안 작성에 AI를 활용하고, 그만큼 멘토링과 코칭에 시간을 더 쓴다. 사무직은 스프레드시트가 기계 추론으로 미리 채워지면서 생산자에서 검토자로 역할이 전환된다. 환자는 웨어러블과 AI 진단 도구 덕분에 증상을 자각하기 전 조기 경고를 받는다. 이러한 미묘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변화들이 우리가 이미 AI 근해로 발을 들였음을 보여준다.
풍요와 불평등의 동시 확대
앞으로 5년, 이른바 ‘가까운 물가’의 시기는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풍요와 불평등이 함께 치솟는 과도기다. 대수학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를 돕는 AI 튜터, 실시간 번역으로 국경을 허무는 교류, 며칠 걸리던 법률 조사 시간을 분 단위로 줄이는 도구 등 지능은 점점 공공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편의의 그늘도 짙다. 초급 코딩, 고객 지원, 반복 분석 등 중산층을 지탱하던 직무가 빠르게 대체되며 안전망은 얇고 재교육은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알고리즘이 맞춤화한 정보는 ‘인지 공유지’를 쪼개 이웃끼리도 서로 다른 현실을 살게 만들고, 물질적 격차와 문화적 소외가 동시에 심화된다.
다리 놓기: 안전망·재교육·조직 재설계
정치 논쟁이나 관료적 지체, 기술 혁신의 파고와 상관없이 전환은 멈추지 않는다. 이미 몇몇 보강재는 모습을 드러냈다. 보편적 기본소득(UBI)과 보조 재교육 시범사업은 새로운 경제적 안전장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의료는 AI로 진단비를 낮추면서 정밀도를 높이고 있다(접근성은 여전히 불균등하다). 일부 학교는 AI가 반복 수업을 맡고 교사는 멘토링에 집중하는 모델을 실험 중이며, 앞서가는 기업은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 같은 인간적 역량 중심으로 역할을 재설계하고 있다. 그럼에도 간극은 크고, 학계·싱크탱크·의회·이사회 어디에서도 해법에 합의가 없다. 정책은 국경 안팎으로 일관성이 떨어지고, 기술 확산의 속도와 분포가 들쭉날쭉해 지역별 영향도 엇갈린다. 맞춤 알고리즘이 진실 인식 자체를 좌우하는 탓에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흔들린다.
의도적이고 인간적인 설계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찬양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인간적인 디자인이다. 기업은 실행보다 판단을 중심에 둔 직무를 설계하고, 교육 현장은 ‘아는 것’보다 ‘분별하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대체 위험을 막는 정책은 의미를 붙잡는 문화적 실천과 짝지어야 하며, 제도는 효율성만이 아니라 존엄을 위해 다시 지어야 한다. 시민은 디지털 역량뿐 아니라 불안정한 변화를 건너는 지원과 회복탄력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
리더십의 기준: 신뢰, 겸허, 실행의 용기
이 시대의 리더는 화려한 발표가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신뢰와 일관성을 구축하는 능력으로 평가될 것이다. 약속과 위험을 동시에 인정하는 균형 잡힌 언어, 지도가 없는 길에서 방향을 제시하되 겸허하게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시범 정책·실질적 재교육 투자·인간 존엄을 중심에 둔 제도 재설계 같은 과감한 실행이 요구된다. 돌아오지 않을 일자리에 대한 불편한 진실과 새로운 의미의 발굴도 솔직히 말해야 한다. 역사 속 진짜 리더십은 위기 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왔다: 산업 붕괴에 맞선 시장, 교육을 재창조한 교장, 임금과 존중을 함께 협상한 노조 지도자처럼.
함께 건너기: AI 근해에서 선택이 향하는 곳
수백만 명이 이미 다리 위에 올라섰다. 우리가 공동의 풍요로 가느냐, 굳어진 불평등으로 가느냐는 다리를 어떻게, 얼마나 빨리 놓느냐에 달려 있다. 미완의 다리 위로 한 걸음 더 들어와 함께 지을 수 있는 권한과 결기를 가진 건축가형 리더가 필요하다. 새로운 인지 지형으로 이주하는 모두의 여정을 존중할 때, AI 근해의 저편에 함께 도달할 수 있다. (필자: 게리 그로스만, 에델먼 테크놀로지 프랙티스 부문 EV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