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가 먼저였다: 오블리크 스트래티지와 프롬프트의 기원
1975년, 아직 누구도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입에 올리지 않던 시절 브라이언 이노와 피터 슈미트는 오블리크 스트래티지라는 카드 덱을 만들었다. 소프트웨어도, 기계도 아닌 이 카드는 짧고 수수께끼 같은 지시문으로 예술가의 막힘을 푸는 장치였고, 소량의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을 주입해 아이디어의 점화를 유도했다. 이 글은 오블리크 스트래티지가 단순한 기발한 도구를 넘어 생성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앞서 보여 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프로토타입이었다고 주장한다. 두 시스템이 공유하는 핵심은 간접성의 논리, 불완전한 입력의 수용, 그리고 ‘틀 자체를 다시 틀 짓기’에서 창의가 나온다는 믿음이다.
비스듬한 지시: 해석 엔진으로서의 창작 규칙
오블리크 스트래티지는 짧고 열린 제안이다. “용납할 수 없는 색을 사용하라.” “각 종류에서 한 요소만.” “최악의 충동에 길을 터주라.” “모호함을 제거하고 구체로 바꿔라.” “조언을 받아들여라.” 이 문장들은 답이 아니라, 명령의 탈을 쓴 질문이다.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기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이 결정하게 만든다. 카드는 의미의 거울이 되어 창작 과정에서 당신이 피하거나 숨기거나 거부하는 것을 비춘다. 그래서 각 카드는 목적지가 없는 프롬프트이며, 문장을 끝내기보다는 빗겨 나가게 만드는 일탈의 시동이다. 데이비드 보위의 Low 녹음 때, 이노는 “너의 오류를 숨은 의도처럼 기려라”라는 카드를 뽑았고, 신시사이저 트랙의 실수를 결함이 아닌 선물로 재프레이밍했다. 그 ‘노이즈’는 곡의 공기를 규정하는 질감이 되었고, 우리는 이미 가진 것을 다시 보는 태도가 혁신을 가르는 경계임을 생생히 확인했다.
촉매로서의 프롬프트: LLM은 불확실성과 일한다
대규모 언어모델에서 프롬프트는 출력의 씨앗이다. “불을 무서워하는 용의 잠자리 동화”든 “서퍼처럼 칸트를 요약하라”든, 프롬프트는 명령이 아니라 ‘있음직한 계속’을 제안한다. 그래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의도적으로 모호성을 설계하는 솜씨다. 가장 효과적인 프롬프트는 과도한 디테일이 아니라, 방향을 주되 한계를 좁히지 않는 ‘환기력’에 있다. 오블리크 스트래티지는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데이터가 아니라 맥락을, 논증이 아니라 변이를 요청한다. 마치 심상의 잠재 공간을 항해하게 하는 나침반처럼, 익숙지 않은 좌표로 사고를 이끈다.
구체적 매핑을 보자. “용납할 수 없는 색을 사용하라”는 “상상을 초월한 과장체로 제품 설명을 쓰라”로 치환될 수 있다. “최악의 충동에 길을 터주라”는 “가장 부패한 관료의 시점에서 유토피아 도시를 묘사하라”가 된다. “모호함을 제거하고 구체로 바꿔라”는 “이 추상적 미션 문구를 초등 6학년 수준의 쉬운 한국어로 다시 쓰라”와 상응한다. 프롬프트는 처방이 아니라 자극으로 기능한다.
초기 ‘프롬프트 엔지니어’로서의 이노
이노는 뮤지션이나 프로듀서를 넘어 ‘입력의 설계자’였다. 앰비언트, 생성음악, 창작 철학 전반을 관통하는 그의 원리는 “조건을 설정하고, 시스템이 스스로 진화하게 하라”였다. 이는 오늘의 생성형 AI 사고방식과 맞닿아 있다. 그는 변환기나 확산 모델 이전부터 ‘발현’을 설계했다. 여러 대의 테이프 머신에 길이가 조금씩 다른 루프를 얹어 서로 위상 차를 만들던 그의 기법은, 프롬프트-추론 루프가 이끄는 생성 과정과 닮았다. 10.2초와 9.8초 루프가 어긋나며 결코 같은 패턴을 반복하지 않듯, 제어된 무작위성과 소수 입력의 조합적 폭발이 순간마다 새로운 질서를 일으킨다. 변환기는 프롬프트를 초기 상태로 삼아 확률적 계속을 거듭하며 유기적 결을 만든다. 여기서 창작자는 확실성의 저자가 아니라 가능성의 큐레이터가 된다.
의식으로서의 프롬프트: 구조화된 교란의 심리
좋은 프롬프트의 요체는 명료함보다 제약, 구체성보다 구조, 사실성보다 긴장이다. 오블리크 스트래티지는 이를 오래전에 체화했다. 유한한 카드 덱이지만, 해석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조합적 잠재력은 사실상 무한에 가깝다. 그래서 맹목 추첨임에도 ‘지금의 나를 위해 쓰인’ 친밀함이 느껴진다. LLM 사용자들이 모델과의 대화를 개인적이거나 때로는 신비스럽게 체감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마법은 모델이 아니라, 거울로 작동하는 프롬프트에 있다. 카드와 프롬프트 모두 확률적 시스템에 던져 넣는 의례화된 입력이며, 목표는 출력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변형을 개시하는 데 있다.
카드에서 코드까지: 창작 도구의 연속체
창의를 ‘천재성의 섬광’이 아니라 ‘구조적 교란의 연속’으로 본다면, 이노의 작업과 AI의 환각은 접점을 이룬다. 연결조직은 프롬프트 그 자체다. 선(先)디지털의 의례와 황홀경이 상징 조합을 유도했고, 아날로그의 오블리크 스트래티지가 구조 속 우연을 주입했으며, 디지털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확률 모델을 조율해 새로운 출력을 길어 올린다. 뮤즈의 외재화는 신에서 카드로, 그리고 코드로 정련되어 왔다.
결론: 프롬프트는 예술, 예술은 프롬프트
AI가 필수로 자리 잡는 오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선택이 아닌 새로운 창의 문해력이다. 브라이언 이노의 오블리크 스트래티지는 가장 큰 변신이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미지로의 세련된 초대’에서 온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알고리즘이 창작을 좌우하는 시대일수록, 프롬프트의 품질이 미래의 모양을 결정한다. 프롬프트는 질문이면서 동시에 선택이며, 모험이고, 의도된 위험이다. 잘 해낸다면 우리는 기계의 시대에도 인간으로 남는다. 이 글의 필자는 로베르토 산텔라나(Verizon Creative Marketing Group 디지털 크리에이티브·테크놀로지 수석 매니징 디렉터)다.
실제 적용 예시
현업에서 통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활용법
아이디어가 막힐 때 오블리크 스트래티지식 제약을 프롬프트에 주입하라. 예를 들어 “금지된 톤으로 요약하라”, “의도적 오류를 보존해 확장하라”처럼 관습을 뒤집는 문장을 던지면, 모델과 팀 모두 관점을 재정렬하며 탐색 폭이 넓어진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목적은 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 편향을 흔드는 것이다.
홈페이지 제작 전 필수 체크리스트
타깃 페르소나와 정보 구조, 콘텐츠 톤&매너, 접근성·성능 제약을 먼저 정의하되, 각 항목마다 ‘비스듬한’ 프롬프트를 추가하라. 예) “모든 섹션을 가장 예상 밖의 순서로 재배치하라”, “브랜드 컬러를 배제하고 대비만으로 히어라키를 설계하라”, “모호한 카피를 초등 6학년 수준으로 바꿔라.” 이렇게 제약과 변이를 동시 설계하면 초기 컨셉 탐색이 깊어진다.
홈페이지 제작 프로세스 단계별 안내
1) 리서치: “경쟁사 강점을 의도적으로 과장해 요약하라”로 차별 포인트를 드러낸다. 2) IA/와이어: “필수 요소 하나만 남기고 레이아웃을 설계하라”로 핵심 흐름을 검증한다. 3) 카피라이팅: “브랜드 보이스를 세 단어로 정의하고, 그 틀로 전면 재작성하라.” 4) 비주얼: “용납할 수 없는 색을 시안 B에만 적용하라”로 경계 테스트를 한다. 5) QA/런치: “오류를 숨은 의도처럼 보존하라”를 체크리스트에 추가해 우발적 장점을 평가한다. 전 과정에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반복 적용하면 실무 의사결정이 한층 유연해진다.